LG전자를 떠나면서
들어가며
25년 4월부로 LG전자에서는 공식적으로 충전기 사업에서 철수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처럼, 저를 포함한 전기차 충전기 관련 인원 대상으로 ES본부 내에서 사내공모를 통한 인원 재배치가 진행되었습니다.
사업 철수 및 사내공모 과정, 그리고 왜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는지에 대해 기록하려 합니다.
외부에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하기에, 일부 내용은 모호하게 기술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업을 접는다고?
조직개편의 시기와 먼저 사라진 조직책임자
매년 4분기, 특히 11월과 12월은 한 해를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때입니다. 동시에 회사에서는 조직개편의 시기이기도 하죠.
조직개편 발표 전에는 항상 소문이 돌았습니다. 누가 팀장이 된다더라, 팀장에서 내려온다더라.
이번에는 특이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충전기 모 팀에 팀장님이 사라졌다더라. 조직도를 확인하니 그 팀은 정말 팀장 없는 팀이 되어 있었습니다. 팀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팀원을 버린 채 이미 다른 팀으로 이동한 상태였습니다.
폭풍의 눈
소문이 느린 저연차로서 24년 4분기는 참 기묘했습니다. 우선 제가 속한 BS사업본부가 해체되고, 본부 단위의 조직개편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갑자기 개발 일정이 뒤로 밀리더니, 어느 순간 사실상 개발 중단 상태까지 다다랐습니다. 제가 있는 관제 개발팀이 분리된다는 소문부터, 위에서는 전기차 충전기 사업 자체의 방향성을 고민한다는 소문까지 들렸습니다.
전기차 충전기 사업부와 관련된 뒤숭숭한 소문과 함께 H&A로 합쳐져 있던 가전(HS)/공조(ES)의 본부 분리와 BS본부 해체라는 큰 폭풍에 휩쓸리게 됩니다. BS본부가 해체되며 전기차 충전기 사업부는 ES본부로, 나머지 사업부는 MS본부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외에 로봇 사업 개편 등 사업 정리 또는 재배치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건조하게 작성되어 큰 개편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1,000명 단위의 인원과 조직을 개편하는 과정이라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만약 이때 본부 단위의 개편이 없었다면, 사업 철수 결정과 사내공모가 이렇게 큰 혼란을 겪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사라지는 사람들
조직개편의 시기가 지난 후, 어느 순간부터 전기차 충전기 관련 인원 중 업무 연관성이 적은 분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는 충전기 업무 관련된 인원의 개별 이동이 제한되기 시작합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요?
24년 12월부터 끝이 나지 않는 기다림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조직개편처럼 생각했습니다. 으레 이런 조직개편은 길어야 3개월이면 마무리되니, 별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차분하게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기다리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요. 그동안 평소에 못했던 자잘한 업무 정리,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이 갑자기 없어지니 다들 처음에는 좋아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쉴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 테니까요. 하지만 이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매주 "다음 주에는 결정이 난다"라고만 할 뿐, 그다음 주에도 똑같이 다음 주에 결정이 난다는 얘기만 들릴 뿐이었으니까요.
담당 업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24년 11월 또는 12월부터 4월 말까지 적게는 5개월, 많게는 6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그저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거취가 불확실한 상태로 보내게 됩니다.
뉴스 기사에서 나오듯이, 25년 5월부터는 전기차 충전기 업무에 참여한 인원을 대상으로 사내공모가 진행되었습니다.
사내공모의 늪
팀장님 저 뽑아주시나요?
회사 내부에서 이동하는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사내공모도 채용 과정과 유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지원서를 작성하고, 지원한 팀의 팀장님과의 면담도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동 희망하는 팀의 팀장님이 뽑아주셔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다르게 말하자면, 지원한 팀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내가 가지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다만 책임님들께서도 "직원 평균 연령이 높아서 저연차 연구원이 귀한 회사이니, 저연차를 버리지는 않을 거다."라고 하셨습니다. 고과도 나름 괜찮았으니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엔드 개발자로서, 저는 이 회사에 대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제조업 회사다."
사내공모에 백엔드 공고가 없는데요?
그렇습니다. 이곳이 제조업 회사였던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프론트엔드/백엔드 개발 수요의 대부분은 관제 개발도 하는 곳인 원 소속이던 MS본부(구 BS본부)에 있었습니다. 전기차 충전기 사업부가 속해있던 ES본부는 서버 개발 수요가 거의 없던 것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대비 사내공모에서의 개발자 TO는 약 30%에 불과했으며, 그 30%조차도 90% 이상은 임베디드 직군이었습니다. 해당 직무에 지원해야 하나 고민될 뿐만 아니라, 지원해도 해당 팀 팀장님이 뽑아주실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근무지가...어디라고?
근무지 또한 문제였습니다. 대부분 근무지가 가산이었지만, 창원인 곳도 많았습니다. 원하는 직무도 아닌데 타 지역 근무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특히 특정 근무지의 경우에는 전체적인 시설, 분위기가 당시 근무지인 마곡보다 좋지 않다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원하는 직무만 지원하고 싶은 것은 욕심이라고 하는 것을 백번 양보해서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쓸 수 있는 공고도 사실상 없는 수준일 뿐만 아니라, 근무지까지 이렇게 이동해야 하는 점에서 회사의 대처에 대해 상당한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사업 철수하는 상황에서 고용 유지만 해도 감사하다고 절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겠습니다. 의사결정자인 임원이 아닌 직원으로서 이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이런 입장에 놓이셨을 때에도 같은 말씀을 하실지 궁금하네요.
사내공모의 끝 그리고 퇴사
세 차례의 사내공모, 그리고 지방 발령 통보
위 과정으로 총 세 차례의 사내공모를 진행했습니다. 결국 모든 사내공모 차수에서 서버 개발 직군은 한자리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서버 개발과 유사성이 있는 직무는 해당 팀 팀장님들이 저보다 저연차인 1년차 미만을 뽑거나, 실무에 바로 투입 가능한 책임급(13년차 이상)을 뽑으시더군요.
이제까지 했던 직무와 맞는 공고도 사실상 없었기에, 모든 사내공모에서 이동할 곳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 사내공모 이후 인사팀에서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전기차 충전기 인원 중 사내공모로 이동을 하지 못 한 인원은 모두 0일 뒤 창원에 있는 팀으로 발령 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공개적으로 적기는 어렵지만, 아래 기사 내용처럼 스마트폰 철수 당시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LG전자에 근무하는 A씨는 "MC사업본부 직원들이 재배치될 때 원하는 근무지로 가지 못해 내부적으로 불만이 쌓여있었다"면서 "수도권인 평택에서의 근무를 희망해도 경남 창원으로 배치된 경우가 많아 이탈하는 인력이 많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글을 마치며
사내공모가 시작될 즈음 혹시 몰라서 이직을 준비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운이 좋게 이직을 하게 되어 강제 발령은 피했습니다만, 사내공모로 이동을 하지 못하신 분들은 창원으로 강제 전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모두 능력과 열정이 있으셨던 분들이라 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높으신 분들이 자기 팀 및 팀원을 챙기지 않고 먼저 도망가는 것부터, 회사의 대처까지 참 실망이 많이 느껴지는 상반기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크게 실망하여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주변 회사 동료분들께 이직 소식을 알렸을 때, 이분들과 더 이상 같은 회사 구성원이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에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할 때의 다짐 중 하나는 "이직을 언젠간 하더라도, 5년은 채우자. 더 이상 이곳에서 성장하기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그 때 나가자."였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갑작스럽게, 이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 의해 떠난다는 사실이 정말 아쉽네요. 같이 밤을 새며 치열하게 일했던 분들이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